책 독서 기록
9/21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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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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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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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271(논제 완성했다)
나의 평점 3.0
오랜만에 읽는 책이 이렇게 가벼운 에세이북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덕분에 논제까지 작성할 수 있었다. 물론 생각할 거리가 바로 앞에 놓여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일 참여할 수 있겠지! 잘 해보자.
청인과 농인의 차이를 알고 있었나.
화자인 하루미치의 아내, 마나미는 굉장히 생각이 건강한 사람 같다. 청인 문화애서 자란 하루미치는 자신이 어딘가 부족하다(듣지 못함으로써 말하지 못한다)를 인식하며 말하는 것을 계속 연습하는 성장 생활을 가졌습니다
반면에 마나미는 모두가 농인인 가족 데프패밀리에서 태어나 말 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두지 않고, 본인을 보는 사람으로 칭하곤 합니다. 더구나 130 데시벨 이상의 소리만 들을 수 있어 보청기를 끼워도 소리를 듣지 못 하기에 아예 듣는 것에 대한 기대, 관심이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둘의 관심은 아마 건청, 들을 수 있는 아이 이쓰키를 낳으면서 더 커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루미치가 이쓰키가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크게 감흥이 없었던 것은 듣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부모 아래에서 들을 수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문제였지 않았을까.
내가 듣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번 깨달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처우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들이 불편하다고 하면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하지만 먼저 나서서 처우 개선에 앞장설 일은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동시에 내겐 그저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만 또 가져간다.
논제는 3가지 작성했다
선택 하루미치와 마나미의 성장환경중 어느편이 낫다고 생각하는가
자유 이쓰키가 태어나고 화자의 반응
자유 마나미가 칭찬을 청인 스태프에게 전해들었을 때, 선생과 마나미의 입장 차이
선택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무래도 더 곤란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발췌
p. 34 로드킬
p. 43
사고를 겪고 나는 변했다.
사진을 대하는 자세도 근본부터 바뀌었다.
일상생활은 물론 사진가로서 가장 신뢰하던 '보다'라는 행 위에 의문을 품었다. 아니, 의문을 품었다기보다는 '보다'라는 행위에 얼마나 구멍이 많은지 통감했다는 게 적절하겠다.
보청기를 끼지 않기 시작한 스무 살 이래, 세계를 오로지 보면서 살아왔는데 실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보이 는 게 전부라는 생각으로 그 배후에 있는 수많은 것들을 무시 한 셈이었다.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눈에 보이 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표면을 눈이 홅은 것에 불과하다.
사고를 당한 마나미를 뒤늦게 발견하고 말았다. 듣지 못하 는 귀가 발견을 늦추었다. 후회가 끊이지 않았다. 보청기를 뺀 지 마침 10년이 되었던 때인데, 듣지 못하는 몸으로서 처음 깊은 좌절을 경험했다.
아이가 들린다는 것을 안 사람의 반응?
p. 61
조금이라도 빨리 검사를 받으려고 한 이유는 '듣는 게 좋 다. 또는 '듣지 못하는 게 낫다: 같은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내 곁으로 찾아온 생명에게 '적절한 소리를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어울리는 소리를 전할 방법을 빨리 알 수 있는데, 그보다 우선할 일은 없었다.
p. 63
검사를 받는 동안 마나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하루미치처럼 소리에 신경 쓰지 않잖아. 처음부터
'소리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부모님이랑 얘기할 때도 주어 를 쓰고 내내농학교를 다녀서 '듣지 못한다'는 자각조차 없었 어. 그래서 애초부터 나는 '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어.
하루미치는 스무 살에 보청기를 빼면서 '보는 사람'이 되었던 거지? 그런 점은 우리 둘이 전혀 다르네.
이쓰키가 태어나고 달라진 점이라면, 음...좀더 '느끼는 사 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이쓰키가 태어난 뒤로는 종일 모공이 열린 것처럼 감각이 확장되어 있어. 이불 위에 있는 이 쓰키의 움직임이나 목소리의 울림처럼 예전에는 눈치채지 못 했을 작은 반응도 감지하게 됐고. 보이지 않는 곳인데, 점점 보이는 것처럼 느껴져. 이런 감각을 소중히 해야 할 것 같아."
p. 67
네가 들은 것. 그것을 나는 바로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생 각한다. 그다음에는 상상한다. 거기에 무슨 소리가 있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들이 연달아 머릿속에 떠오르며 다양 한 형태로 생겨난다. 이렇게 상상해도 괜찮다. 전혀 상관없다.
자유롭다. 공연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상상하기 위한 씨앗, 나는 이미 세계로부터 그 씨앗들을 받 았다. 앞으로는 너 역시 상상하기 위한 씨앗을 내게 주겠지.
더없이 감사한 일이다.
이쓰키가 듣는 듯한 조짐은 나에게 상상하기 위한 새로운 힘을 주었다.
마나미가 말한 '느끼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더욱 깊게 온갖 것들을 느끼고, '상상하는 사람'으로서 만물의 경계에 얽매이 지 않는 상상력을 지녀야지. 그렇게 너에게 소리를 전해야지.
이쓰키가 듣는다는 사실이 새삼 분명해졌다. 그렇지만 결 과를 듣고 딱히 감회가 새롭지는 않았다. '오, 이쓰키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게다가 세 살 전에 고 열이나 중이염을 앓다가 청력을 상실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 고, 불분명한 이유로 청력을 잃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인성 난청 같은 경우도 있다. 그런 것까지 고려하면 걱정에 끝이 없지만, 우선은 이쓰키에게 적절한 소리를 전할 대략적 인 방향을 알게 되어 안심했다.
p. 97
온기를 나눌 수 없는 낯선 타인의 음성은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한들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내보내는 순간 사라져버렸다. 청인 에게 어떻게 들릴지도 모르는 채 내보낸 음성의 행방을 상대 방의 표정에서 읽어냈다. 그렇게 상대방의 안색을 살피면서 내 목소리가 좋은지 나쁜지 확인했다. 그리고 들을 때는 귀와 눈에 온 신경을 집중해 잡음 섞인 소리 속에서 꿈틀대는 입 모양을 단서 삼아 상대방의 말을 추측했다. 나에게 대화란 그 런 것이었다.
p. 101
이쓰키가 성장할수록 디테일이 숨 쉬는 마나미의 기억에 대한 선망도 더욱 강해졌다. 그 선망은 '나도 저런 기억을 갖 고 싶다.'라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마나미의 아버지가 '딸기'를 알려주었듯이, 나 역시 한 단어 를 정성스레 이쓰키에게 전하거나, 매일매일 일기를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면서 조금씩 '세세한 기억을 남기려고' 의식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줄 알았던 기억이 빙글빙 글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 기억을 원고로 써보니 내 체험으로 술술써져 허탈할 정도였다.
103. 둘의 차이를 어떻게 보나요
마나미의 모어는 일본수어라 꿈속에서도 대화는 대부분 수 어로 한다. 음성으로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만화의 말풍선 처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불쑥 나타난다고 한다. 역시 나와 전 혀 달라서 "헉!" 하고 놀랐다.
나는 별로 꿈을 꾸지 않는다. 아니, 깨자마자 잊어버린다.
커다란 소리로 잠꼬대를 했는지 내 목소리의 울림에 깜짝 놀 라 일어날 때가 가끔 있었다. 그런 걸 보면 꿈속에서 음성언어 로 대화했던 모양이다.
수어를 만나고 16년째인 지금은 꿈속에서도 수어로 얘기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내 속마음을 수어로 격렬하게 털어놓으면 팔에 독특한 피로감이 남는데, 그런 피로를 느끼며 잠에서 깨 는 날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p. 77
지금이야 수어가 내 언어로 충분히 몸에 익어 스스로를 '농 인 이라고 말하지만, 스무 살까지는 내 정체성이 음성으로 소 통하는 청인 문화 속에 있었기 때문에 청인 중심의 생각이 강 했다. 말은 음성으로 내는 것(수어는 몸짓이나 손짓밖에 나 타내지 못하는 언어다)'이라든가 '노래는 음성으로 부르는 것, 음악은 귀로 듣는 것(그러지 못하는 나는 노래하지 못하고 즐 기지도 못한다) 이라고 잘못 생각하곤 했다.
가족 모두가 수어를 모어로 삼는 데프 패밀리에서 자라난 마나미의 사고방식은 나에게 너무나 낯선 문화였다. 일상생활 에서도 사소한 계기로 서로의 차이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p. 78
내가 처음 자장가를 불러 이쓰키가 잠들었다고 말했을 때 문득 궁금해졌다. 마나미는 어땠을까?
당연하지만 마나미는 음성으로 부르는 자장가를 모른다.
하지만 수어 역시 언어이니 분명 무언가 '부모 자식 사이에서 만 통하는 특별한 노래'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p. 203
앞서 적었지만 마나미의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마나미, 남 동생으로 구성된다. 모두 농인으로 수어가 모어다. 이런 농인 가족을 데프 패밀리'라고 한다. 내 가족은 아버지(청인), 어머 니(청인), 나, 장녀(청인), 차녀(난청)로 구성되며 음성언어가 모어다.
p. 170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 다들 평범하게 착한 애들이라고 생각 했거든. 그래서 실은 어느 애가 자폐증이었는지도 몰라.
선생님 눈에는 오늘 그 자폐증 아이가 여태껏 본 적 없을 정 도로 부드럽게 소통한 모양이야. 처음 만난 사람한테 아이가 스스로 "이 색이 좋아."라면서 취사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선 생님에게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나 봐.
"말을 하지 않는데도 소통이 가능해서 깜짝 놀랐어요... 우리 도 어려워하는데. 솔직히 농인이 스태프라고 해서 괜찮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슬쩍슬쩍 봤는데, 감동받았어요." 이런 얘기를 나한테, 말, 하, 지, 않, 고! 청인 스태프한테 전해 달라고 했대. 수업이 끝난 다음에 그 스태프가 얘기해줬어. 선생님이 칭찬해줬다면서. 선의로 전해준 거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어. 오히려 '왜 알려주는 걸까. 알고 싶지 않은데? 하는 생 각만 들었고, 지금도 영 개운하지 않아. 뭘까, 이 감정 ..
p. 175
마나미가 석연치 않았던 이유는 선생님의 감상을 스태프에 게서 간접적으로 전해 듣고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수업 후에 경황이 없어서 말할 틈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결 과적으로 선생님은 자신의 감동을 마나미에게 직접 전하지 않았다. 설령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표정, 힘찬 악수, 지그시 마주 보는 눈빛 등으로, 즉 언어를 떠받치는 '말'로도 감동을 전할 수 있다. 그런 '말'은 때로 농인에게 '언어' 보다 훨씬 깊 은 울림을 주며 들리기도 한다.
은 울림을 주며 들리기도 한다.
"아. 그랬을지도 몰라. 뭐든 좋으니까 선생님이 직접 똑바로 나를 보면서 얘기해주었다면 무슨 말인지 전혀 몰라도 기뻤 을 것 같아.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감 동이란 서로 눈만 봐도 금방 전해지니까." 아무리 선의 있는 언어였다고 해도 본인에게 말하지 않고 스태프에게만 말하고 끝낸 것은, 그리고 스태프가 어중간한 언어 만 전달해버린 것은, '같이 있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모 른다.'라는 정보 격차를 여봐란 듯이 보여준 셈이다. 그런 것은 마나미를, 아니, 농인을 고독으로 밀어넣는 잔혹한 행위이기도 하다.
p. 220
나는 언어'와 말을 의식적으로 구분하여 쓴다:
다른 사람에게 내 의지를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장을 쓰 는 데 필요한 문법처럼 규칙과 의미가 정해져 있는 것이 '언 어다. 한편 '말'은 어린아이가 내는 소리나 춤, 그림, 동물의 울음 등 의미를 특정하기 어려운 행위를 포함한다.
달리 표현하면 언어'는 의미를 관장하려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을 상징하며, '말'은 감정이 의지를 뛰어넘어 절로 넘쳐난것이라고 할 수 있다.
p. 221
하지만 수어를 배우 는 동안 늘 '언어'와 감정이 어긋나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마치 솜이불로 둘둘말린 듯이 답답 했고, 5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줄곧 감정과 언어가 자연스 럽게 연결된 '말'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철이 들락 말락 하던 유년기에 발음훈련을 하며 언어'로 이야기하라 강요당했고, '말'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 미만의 감 정이라고 부정당했다. 그런 내게 '말'은 되찾아야 하는 것이었 다. 마음과 몸과 말이 연결되지 않아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지긋지긋했다.
p. 223
과거의 모든 일들이 맞물려 지금의 내가 있기 때문에 부모 님을 탓할 생각은 정말로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속 한 편에는 음성언어를 강요당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런 생각 때문에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수어라는 '언어'를 이쓰 키에게 강요하지는 않을까 망설였다.
p. 256
그저 괴로운 기억이 아니다. 그저 기쁜 기억도 아니다.
어떻게 해도 괴로울 걸 알지만 그럼에도 반복해서 떠올리
며 그 속에서 희비가 뒤섞인 생각을 끄집어내게 되는 기억, 그 런 기억들에 의해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빚어졌다. 성장하는 사고의 원천은 바로 서로 다름의 경계선에 있었다.
왠지 알사탕 같다. 아무리 핥아도 절대로 녹지 않는 마법의 알사탕. 간단히 소화시킬 수 없고 맛과 색이 늘 변해서 대굴대 굴 굴리며 언제까지나 달콤쌉쌀하게 맛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기념일은,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날 서로의 경계를 알게되는 날을 뜻하는 날이다.
선생의 반응에 기분나빠했던 마나미의 반응은 그리고 하루미치의 해석은
어찌보면 자격지심, 열등감으로도 느껴졌다
선생은 그정도로 까지의 생각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저 나의 표현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청인에게 전해달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말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청인들에겐 농인에게 그 외의 표현을 하는 것 자체를 힘들다고 여겼을 지도 모르는데
그걸 잔혹한 행위라고 보는 것은 조금.
'영화, 책, 그리고. > 책- 소소한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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